본문 바로가기

세상보기

트위터 Bio와 나

 
“갑:을이 아닌 대안의 공동체를 꿈꾸는 인간. 인문학으로 현재를 읽고, 다큐멘터리로 과거- 현재-미래를 이어보는 액티비스트. 앎과 삶의 경계에서 졸라게 고민하는 스물다섯 청춘. 커뮤니케이션/소셜미디어/콘텐츠의 관계들을 공부하며 자발적인 잉여짓 중.”
 
 

 
 
위 글은 제 트위터 계정의 Bio란에 적힌 제 소개글입니다. 트위터 소개란의 짧은 몇 문장이 저의 현재입니다. 갑과 을의 관계로 인간을 규정하는 기업조직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인간과 인간의 연대가 사라지던 그곳이 불만이었습니다. 저에게 공동체는 참 소중한 곳입니다. 태어나 자란 동네의 교회 공동체는 저의 성장무대였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서 친구들과 어른들과 동생들과 슬기롭게 관계맺는 법을 배웠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방송반이라는 창작동아리에서 제 꿈을 발견했습니다. 대학에서 했던 영상제작학회/강연동아리/기독교선교단체는 꿈을 공유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꿈을 검증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학교나 회사같은 공식적인 조직에서 느꼈던 만족만큼 대안적인 공동체에서 만났던 기억들이 너무 소중했기에 지금도 대안의 공동체를 꿈꾸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영상으로 세상을 이야기해왔고, 대학도 영상제작 관련학과로, 대학에 다니면서도 줄곧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오피디, 오감독으로 불리우기도 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는 ‘인문학’을 공부했다고 말합니다. 현재를 읽는 시선과 그 시선과 시선들의 공백을 채우는 치열한 사고는 대학에서 했던 인문학 공부였기 때문입니다. 잘 읽히지도 않는 고전을 읽고, 어려운 개념어 써가면서 꾸역꾸역 했던 토론들과 글쓰기들이 사고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사고의 공백을 제대로 채우기 위해 ‘문화연대’ 나 ‘민주언론시민연합’과 같은 단체의 특강들을 찾아다니기도 했고, 시민의 공론장이 되었던 집회 현장들과 광장들을 돌아다녔습니다. 날것의 시선들을 재료로 해서 소꿉장난 같은 요리를 했던게 다큐멘터리였고 미디어 였습니다. 잠시 그 소꿉장난을 업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다큐멘터리 제작사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돈버는 일로 바꾸는 방법은 쉽지 않았습니다. 


 
앎과 삶의 경계에서 고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앎을 있는 그대로, 삶의 현장에 우겨넣었다가 선배들한테 욕도 먹었보았고, 삶에서 앎의 쓸모를 찾지 못하는 일들을 너무도 많이 만났습니다. 그래서 앎과 삶의 균형을 찾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 스스로를 ‘잉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돈으로 계량하려는 흐름을 고민하다가 저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시장이 인간의 모든 영역을 감싸도는 오늘. 저 스스로 ‘무가치함’을 선언하는 것은 인권/행복/사랑과 같은 교환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감수성을 깨우기 때문입니다.


'세상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진에세이 #2 평범한 봄날  (0) 2012.04.22
사진에세이. #1 도시인의 삶  (0) 2012.04.22
기호의 장벽  (0) 2012.02.10
내가 미디어를 공부하는 이유  (3) 2011.12.07
묵직한 카메라 라이카, 명품의 조건  (0) 2011.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