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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이야기

Job fair에 필요한 것은?

9월 1일과 2일 건국대 새천년관 지하에서는 잡페어가 열리고 있습니다.

학기를 시작하며, 들뜬 마음을 품고 그곳에 방문했습니다.


벽면 가득히 기업정보와 노동조건, 급여수준이 있었습니다.

컨벤션홀 내부에는 기업들의 부스가 개설되어 있었고,

그 부스에는 기업의 젊은 사원들이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직업 선택이 먼저라고 믿고 살았는데,
회사 선택부터 고민하는 동기들을 많이도 만났습니다.

이름을 들어본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의 기업 부스에는 줄을 서야 상담을 해야했고, 생소한 중소기업의 부스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직업박람회 현장에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이 뭔지 약간을 알 듯 했습니다.

취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현실적인 감정으로 바꿔주기에 충분한 장소인 듯 했습니다.


취업박람회를 다녀와서, 나누었으면 하는 글을 이곳에 붙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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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선택을 앞둔 한 젊은이의 성찰>


"직업을 선택할 때 주요한 기준은 인류의 행복과 자기완성이다.

두 가지는 서로 엇갈리거나 적대적이어서 한쪽이 다른 쪽을 배제한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자신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 일해야 비로소 자기완성을 이룰 수 있다.


그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만일 사람이 자신만을 위해 일한다면 설령 저명한 학자나 훌륭한 현자 혹은 뛰어난 시인이 되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결코 진정으로 완성된 위대한 인간이 될 수는 없을 터이다.


역사는 이 세상 전체를 위해 일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높여가는 사람을 위인으로 인정한다.

최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준 사람을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기린다.

종교도 가르쳐준다. 모든 사람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인물은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이런 생각을 섬멸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만일 우리가 많은 사람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가기로 삶의 방향을 설정한다면, 어떠한 시련도 우리를 굴복시킬 수 없을 것이다.

시련이란 그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잠시 동안의 희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사소하고 한정적이며 이기적인 기쁨을 향유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죽어도 우리의 삶의 자취는 조용히, 그러나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며, 타고 남은 재는 고귀한 인간들의 반짝이는 눈물로 젹셔질 것이다."


- K. Marx, <직업 선택을 앞둔 한 젊은이의 성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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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글은 '칼 마르크스'가 고등학교 과정인 김나지움을 졸업하면서 학교에 제출한 졸업에세이 중 일부라고 합니다.
17살의 고등학생이 이 글을 썼다니, 마르크스의 비범함에 경탄해봅니다.

직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자기의 완성과 더불어 ‘인류의 행복’까지 살펴보는 그 태도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 봅니다.


Job fair에 진정 필요한 건, '소명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진 삶의 조건들을 가시화시키고, 그들의 수요와 나의 조건들을 맞춰보는 그런 것도 중요합니다만,
내가 진정 어떤 삶으로 이 땅을 이롭게 만들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배웠고, 또 제게 주어진 조건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삶의 궤적들이 그를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을 가진 저에게도 'job fair' 의 분위기는 신념을 흔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제가 가진 삶의 모습을, 몇 분간의 면접과 몇 장의 에세이..
그리고 몇 가지의 숫자로 검증하려는 그 곳의 '합리' 앞에서는
제 신념이 너무나 연약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업무의 성격과 그 가치에 대한 메세지는 제공되지 않은 채,
얼마의 급여와 근무조건들만 강조하는 세상에서, 기업은 우리들의 ‘소명의식’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것만 같았습니다.


물론, 한국의 현실에서 '소명의식'을 찾는 기회를 갖는 건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기업도 친구들도 '소명의식'보다는 다른 것을 더 중시하는 것 이겠죠...

어쩌면, 그 소명의식을 발견하기 이전에, 사회적 관계의 틀이 우리의 발견을 방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떤이는 부모의 배경과 가정 환경, 교육조건과 같은 것들이 소명의식을 발견하기에 충분한 환경을 줄 수 있었고,
그렇게 주어진  풍요 속에서 하고 싶은 것을 어린나이에도 시도할 수 있었겠죠..
성취와 실패를 통해 소명을 스스로 발견하기도 하겠지만, 

어떤이는 주어진 삶의 무게에 지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데도 힘이 들 수도 있습니다.
내일의 고민을 오늘 해야하는 그들에게 성취와 실패는 사치라고 생각 될 수도 있겠죠....

가슴 아픈건, 두개의 차이가 크다는 사실입니다.
불안에 휩싸여 선택한 것들이 상처로 남는 일들이 많았음을 기억하면,
삶에 무게에 눌려 선택한 직업이 어떠한 결과에 가까울지 알 수 있겠지요...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나는 무엇을 통해 행복 할 수 있는가? 
이 사회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일하는 자가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익히 들었고,
타인을 위해 헌신하면서 세상을 향한 사랑을 실천했던 자들이 역사에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배웠어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네 '앎'이 '삶'으로 변화 되기란 참 어렵기 때문입니다.

좋은 사회는 “누구나 자아실현을 하게 끔 돕는 세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주어진 삶의 조건의 차이를 전제하고 움직이는 세상이 아니라
그 차이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만약 그 기회가 편중되어 있다면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
진짜로 공평한 사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Job fair를 가서 이런 저런 생각을 키워봅니다.

이런 한량같은 생각을 할 수 있고,
또 글로 쓸 수 있는 것도 제가 가진 삶의 조건이 기득권에 가깝기에 그런 것 일 수 도 있습니다.

제가 느낀 문제의식을 나누는 것이 제 삶의 '소명'이라면

이렇게 블로그를 통해서 나눈 글이 저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고 그들의 행복을 위한 실천이 되겠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류의 행복과 자기완성은 그리 먼 것이 아니랍니다.